
1. 총칼보다 무서운 침묵, 언어를 지우는 식민지 통치
1910년 8월 29일.
역사의 시곗바늘이 조선을 향해 잔혹하게 멈춰버린 날.
경술국치(庚戌國恥),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공식적으로 잃은 그 순간부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나라의 국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의 통치는 눈에 보이는 폭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억압은 더 은밀하게, 더 깊숙이,
사람의 ‘생각’과 ‘표현’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겨눈 것은 바로 ‘말’과 ‘글’,
즉 사람이 생각하고 연결되며 살아 숨 쉬는 방식 그 자체였습니다.
🔇 교육 현장에서 시작된 침묵의 씨앗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며
**“교육은 황국 신민의 자질 함양”**을 그 목표로 삼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교육이 지속되는 듯했지만,
조선어는 단지 선택 과목으로 밀려났고,
많은 학교에서 아예 한국어 수업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울 수 없는 나라,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이었습니다.
말을 읽고 쓰고 느끼며 자라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일본어 교과서를 앞에 두고
자기 이름마저 제대로 부를 수 없게 된 것이죠.
🧾 모든 종이에 남은 타인의 언어
공문서, 교과서, 시험지, 병원 차트, 심지어 혼인 신고서까지—
모든 공식 문서가 일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행정 언어를 일본어로 제한하며,
조선어는 ‘비공식적 언어’로 몰려 갔습니다.
신문과 잡지는 치열한 검열을 받아야 했고,
순수 문학조차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삭제되거나
출판 자체가 불허되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검열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언어를 지우는 고의적인 말살 행위였습니다.
🪪 이름마저 빼앗긴 사람들 — 창씨개명
1939년부터 시행된 **창씨개명(創氏改名)**은
사람의 뿌리와 정체성을 짓밟는 상징적인 정책이었습니다.
- ‘김수영’은 ‘가네다 슈에이(鐘田 秀英)’가 되었고,
- ‘박정숙’은 ‘하라다 사요코(原田 小夜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일제는 “자발적”이라 홍보했지만,
공무원 채용·식량 배급·학교 진학 등에서 암묵적 불이익이 따랐기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강요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름은 단지 부르는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의 역사, 가문, 언어, 그리고 삶의 서사가 담긴 것이었기에
그 이름을 지우는 일은 곧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습니다.
🗣 “일본어를 국어로”— 공식 언어의 박탈
공공장소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점차 금기시되었고,
학교 조회, 교회 예배, 경찰 조사, 병원 진료 등
모든 공식 상황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라는 지침이 확대되었습니다.
심지어 일제는 라디오 방송, 극장 공지, 안내 방송까지
모두 일본어로 통일하였고,
서울 시내의 간판 역시 일본식 표현으로 바꾸도록 압박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말문이 닫혔고,
소곤거리거나, 눈짓으로 이야기하거나,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 사라진 말, 지워지는 기억
이러한 식민지적 언어 말살 정책은
단지 언어를 없애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의도한 것은 ‘기억의 지우개’를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조선의 역사 책은 사라지고,
- 민요는 ‘야만적’이라 금지되고,
- 한글로 된 교과서는 폐기됐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이야기를 잃고,
노래와 설화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뿌리를 잊는 존재로 길들여져 갔습니다.
🎙️ 총칼은 육신을 조준했지만,
언어 말살은 정신과 기억을 조준했다
이 말은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회고하며 남긴 구절입니다.
총칼은 몸을 다치게 하지만,
말을 잃으면 생각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고,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게 됩니다.
말을 잃는다는 건,
시간을 잃고, 장소를 잃고, 사람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육체보다 더 깊고
더 오래가는 상처였습니다.
2. ‘말’을 지킨 사람들 — 칼 대신 문장을 들다
🖋️ 주시경, 말의 씨앗을 뿌린 사람
1908년, 주시경은 조선어를 사랑하는 몇몇 지식인들과 함께
국어강습소를 엽니다.
그는 ‘우리말의 뼈대를 세운 사람’이라 불립니다.
- 국문 문법 최초 정리
- 《국어문법》과 《말의 소리》 집필
- ‘한글’이라는 명칭을 제자들과 함께 제안
그는 병환 속에서도 제자들에게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말을 잊지 마라. 사람은 죽어도, 말이 남아야 산다.”
그 한마디가 이후 수많은 ‘언어 독립운동가’들을 키워냈습니다.
3. 조선어연구회에서 조선어학회까지 — 기록으로 지켜낸 말
주시경의 뒤를 이은 제자들—최현배, 이윤재, 권덕규, 김윤경 등은
1921년 조선어연구회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로 개편되어,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언어 연구와 보급에 나섰습니다.
주요 활동:
- 1926년 ‘가갸날’ 제정 → 훗날 ‘한글날’로 명칭 변경
-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발표
- 1936년 ‘표준말 사정’을 위한 대규모 설문조사
- 1940년대 초반 《조선말 큰사전》 편찬 착수
조선어학회는 당시 기준으로 말도 안 될 만큼 선진적인 접근—
조선어의 표준화 작업, 과학적 표기법, 외래어 통일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언어 독립’을 위한 가장 치열하고 실용적인 투쟁이었습니다.
4. 조선어학회 사건 — 말 때문에 잡혀간 사람들
1942년 10월,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전을 제작하던 학자 33명을 일제히 검거합니다.
이는 조선어학회의 정체성이 ‘지식 단체’를 넘어
민족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요 인물:
- 이윤재: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
- 최현배: 죽음 직전까지 몰렸으나 살아남음
- 김윤경, 권덕규 등: 고문 및 장기 수감
구속자 명단은 주부에서 학생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죄목도 없이 ‘조선의 얼을 지킨 죄’로 고문을 당하고, 가족의 생계마저 짓밟혔습니다.
“우리가 사전을 만들다 죽으면,
후손이 그 뜻을 완성해 줄 것이다.”
— 최현배
이 사건은 단지 ‘지식인의 탄압’이 아닌
‘말할 권리 자체를 박탈한 폭력’이었습니다.
5. 글로 싸우다 — 문학과 언론 속 한글의 항전
일제가 칼을 들이밀자,
작가들은 펜으로, 문장으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 딱지본 소설과 비밀 출판
- 딱지본: 잡지 크기의 짧은 소설.
가볍게 읽지만, 사람들에겐 한글 학습 도구이자 민족문학의 씨앗이었습니다. - 대표 작가: 현진건, 염상섭, 김동인 등
그들은 현실 비판과 민족의식 고양을 모국어 문학으로 실현했습니다.
📰 《조선일보》《동아일보》의 문자보급 운동
- ‘한글은 민족의 뿌리’라는 사명으로 문맹 퇴치 운동 전개
-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 시골 마을 곳곳에 한글 교사 파견
- 한글 교재·소책자 배포
이러한 신문사의 활동은 결국
한글 보급이 곧 민족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 손으로 짓는 독립 — 정세권과 건축 속의 한글
🏠 정세권(1888~1965)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건축가, 그리고
조선어학회의 조력자였습니다.
- 종로에 한글 잡지사·사전 편찬실이 있는 공간 직접 제공
- 건물과 인쇄 시설을 기부
-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회의를 계속 지원
정세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지키는 건 말이며,
그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의 역할은 ‘후원자’가 아니라
‘말이 숨 쉴 집’을 만든 건축 독립운동가였습니다.
7. 잃을 뻔한 말, 되찾은 사람들
해방 후, 조선어학회는
압수당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다시 모아
1947년 제1권을, 1957년 제6권 완간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 사이에는
- 광복 직후의 혼란
- 전쟁 속의 종이 부족
- 학자들의 유랑과 병환
이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들은 끝내, ‘말’을 되찾았습니다.
8. 말은 곧 존재다
한글을 지킨다는 건
단지 문자 체계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었고,
- 마음속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일이었으며,
- 침묵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한글날'을 맞이해
그때의 외침을 되새기는 이유는
이 글자들이 단지 소리가 아니라,
민족의 기억이고 정신이며, 나의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라는 글자를 쓰며 무언가를 시작하고
‘사랑’이라고 써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그 시대, 목숨을 걸고 말과 마음을 지켜낸 이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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